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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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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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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믿음과 구원이 무엇인지 정의를 달리하자 무엇이 죄인지에 대해서도 정의가 달라짐을 새삼 신기해하며 다시 봅니다. 바울의 회심은 유대인 정체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이어져 온 참 정체성을 온전히 한 것임을 다시 새겨 봅니다. 이 회복은 몇 군데 적당히 뜯어고쳐 될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고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온전한 회복이면서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한 온전한 변화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설교에서 제시한 톰 라이트의 의견이 다른 것 같아도 연결되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때부터 본래 ‘떠돌이’였던 유대인이건만 욕심으로 덧붙이고 고집으로 유지해 온 ‘나라’ 개념이 지상의 국가, 지상의 민족으로 생각을 굳어지게 하여 구세주를 제대로 못 보는 방해요인이 되었음을 짚었습니다. 어떤 유대인(바울)에게는 유대교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의 구세주이심을 받아들이는 연속이 일어나고 어떤 유대인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때 왜 누구한테는 일어나고 누구한테는 안 일어나는가, 의문이 든다는 질문 말씀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 말씀이었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말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다시 생각하고 개인의 마음에 있어서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함을 인정했던 그때가 가장 안정적인 상태였음을 고백하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유대인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으나 어떻게 한계지었느냐, 예수님께서 유대인이 잃어버렸던 본뜻을 실천하신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유대 율법의 정의는 수준이 다르기에 그간 선지자를 보내어 계속 말씀하셨는데도 못 알아들었고 마침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만나 깨우치고, 깨우친 다음에도 계속 죄인임을 고백하는 모습을 통해 제대로 예수 믿는 사람 된다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짚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과 같은 일들을 현실에서도 보게 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항상 자기 경계를 허물어 나가야 하고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설교를 이해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게 많은데 무엇이 참인가 생각하면 사람 속에서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달라지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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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저도 예람교회의 '사귐과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편영수 2022/06/19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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