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사귐과 대화

907   1/46

 내용보기

작성자


항심

제목


2022년 6월 5일
대제사장, 레위인도 율법을 잘 지킨다 생각했을 텐데 율법의 정수가 무엇인가 보이는 말씀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민자로 살면서 이민자로 살지 않았다면 이민자 문제에 이렇게까지 관심 갖고 지켜보지 않았을 것임을 생각하며 내 지평 넘어 못 보던 것을 찾아야겠다 결심하고 이웃 볼 줄 아는 눈을 귀하게 여기게 된 경험을 나눠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깨지고 부딪히고 억지로도 스스로도 열려보고 열어야 겠다는 말씀, 시작할 수 있게 힘 주시는 것과 지평 열어주시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백안시당하던 사마리아인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강도 만난 이를 돕지 않았겠나 하는 말씀이 있었고 동병상련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해주신 말씀도 있었는데 모두 여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함께 적어 둡니다.
태어나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예람에서 사마리아인 설교를 가장 많이 들었고 그 점이 은혜스럽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 사로잡히고 어떤 사람은 울타리를 벗어난다고 하셨는데 긴 세월 벗어나기도 사로잡히기도 하며 지내온 마음을 들여다보니 하나님은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해진 일임이 강조되었는데 왜 사마리아인의 그 마음을 예로 드셨을까, 모두가 원죄의 유산과 구원의 희망을 받았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선행이라 하지만 표나는 일에 애쓰고 인정받기가 익숙한데 성경에서 말하는 게 진짜 그런 건가, 사마리아인의 그냥 돕는 마음이 느껴졌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는 말씀을 이어 하시는 것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게도 되었습니다. 레위인, 제사장, 강도 당한 이, 사마리아인, 다들 등장인물 중 누구에 자기를 이입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다짐하거다 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이야기에서 굉장히 ‘큰일’을 하고도 존재감이 전혀 없는 인물이 있으니 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 또한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죄의 유산과 구원의 가능성 사이 어디쯤에서 레위인처럼, 대제사장처럼, 사마리아인처럼 자기를 실천한 결과가 강도짓이었을뿐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한다는 데서는 레위인이나 대제사장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을 적어도 레위인이요 대제사장쯤은 된다고 여긴다면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멀리 밀어냈듯 강도 또한 존재감조차 없는 자리로 밀쳐 두겠구나 싶었습니다. 엉뚱한 생각일까요? 넘어설 하나의 지평이 아닌가 싶어 적어두게 됩니다.
-------------------------------------
어제 설교 끝나고 요약문을 적어서 올리고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어서… ‘꿈속에서 적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더랬습니다. 하필이면 저장도 안 해 두어서 마지막까지 판단착오로(어제 복사한 내용이 기억되어 있을테니 붙여넣기를 실행해 보았어도 되는 건데 그걸 또 임시저장 문서를 찾겠다고 뒤적거리느라 놓치고, 일이 많았죠) 결국 원본은 잃어버리고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 사본을 제작하여 올립니다.
편영수  :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에 한 발도 들어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종 못할, 더러운 사람들로 그저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도 무시당한 아픔이 있었기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진 사람의 아픔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서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입니다. ‘사귐과 대화’ 시간에 제가 한 말입니다.
  2022/06/06
유선희  :  성경 속 강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 노릇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길에서 돈은 빼앗아도 되고 그를 위해 좀 때려도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 남들과 섞여 사는 동안 남들 눈에는 평범한 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찍 소리 못할 사람들을 향해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는 거룩한 척 도덕적인 척했을 수도 있죠. 예람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설교를 많이 한다고 예람이 선한 공동체가 될 수 없듯, 사람의 힘으로 선해지고 사람의 눈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한계와 맹점을 더더욱 느끼는 요즘입니다. 만남과 글 다 반가워요!   2022/06/11
유선희  :  제목:어린이 주일학교에 더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이야기했듯 저는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했습니다.
몇 년을 그 일로 인해 예배 참여가 어려웠는데
아이들 주일학교는 더욱 더 참여하기가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각자의 이유로 불참할 때도
아이들의 신앙생활과 일상을 방해하지 않고 이어나가게 하려고
아이들을 설득해 교회에 데려오고 줌 앞에 앉혔습니다.

제가 당한 일들, 폭언, 구박, 괴롭힘...
네가 잘못하는 거야, 네가 갈등을 피하는 거야, 네가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거야
라는 상대의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바보같이 당하는 입장에 스스로 오래 멈추어 있었으니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느낀 것들이 맞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으니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참여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배 때 뵐게요.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삭제 당해 여기에 올립니다)
  2022/06/11
Prev
 2022년 6월 12일
항심 2022/06/06 446
Next
 1월 9일 [1]
김지은 2022/06/06 446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Muz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