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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N YU K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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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예수, “무슨 뜻인가?”
“그가 나와 다르지 아니한 인간이므로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사실상 그것은 대답이 되지 못한다. 동의어 반복 (Tautology)이다.
(1) 십자가에서 뛰어내리 못하는 예수
(2) 나와 다르지 아니한 인간이므로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지 못하는 예수.
두 가지가 같은 말이다.

동의어 반복은 의미 있는 대답이 될 수가 없다.
다시 질문하였다.
“So what?"
“인간이 십자가에 매달리면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그게 당신에게 왜 중요한 사건인가?
“인간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뛰어 내린 사건이 당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대답: “인간 예수와 나의 동일시(Identification)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중요하다.”
“그가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가?”
“........”
내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질문하였다.
“그 사실이 당신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지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실 때문인가?
2000년 전, 그가 만나본적도 없는 익명의 청년이 십자가에서 못 내려왔다는 사실이 그에게 중요한 이유를 끝까지 추궁하였으나 “예수와의 동일시”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나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대답이 아니었다.
다시 질문하였다.
“나와 당신에게도 가정과 직장과 교회생활에서 뛰어 내릴 수 없는 십자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십자가 이거나, ‘당신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십자가가 아니고, 인간적 한계 때문에 뛰어 내릴 수가 없는 십자가이다. 선택의 결과가 아니고, 필연(Givenness)이다.
반면에 예수의 십자가는 선택의 결과이다. 그의 십자가와 우리의 십자가를 동일시 할 수가 없다. 두 가지 십자가의 의미가 다르지 아니한가?

이때 그가 즉각 대답하였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 없는 예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사실 때문이 아니고, 의미 때문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가 다시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였다.“자기-부정 이지요”.

여기서부터 대화의 탄력이 붙기 시작하였다. 4단 기어에서 3단으로, 그리고 드디어는 1단으로.... 내가 다시 말하였다. “2,000년 동안에 모든 교회가 예외 없이 예수의 십자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것이 자기-부정의 뜻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교회와 ”종교“는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교회가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예수’를 강조하고 “종교”와 차별화 하려는 것은 다른 교회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목사님이 이처럼 낯선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목사님은 일반교회들이 예수를 神格化 함으로서 십자가 사건의 의미가 왜곡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가 神이라면, 그것은 예수의 受難을
위장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를
강조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는 연극이 아니고 Real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그분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가 인간임을 밝힘으로서
자기-부정이라고 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일평생
그분이 보여주신 삶과 말씀의 핵심이 자기-부정이고, 교인들이 이날까지 그를 추종하고
심지어는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의 표현을 이해/공감 할 수 있게 되었다. 내친김에 내가 한마디 더 하였다.

“예수를 신격화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우상화이고 예수의 자기-부정을 훼손하는 처사이다.
우리교회가 그들을 ‘종교’라고 호칭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 된 “어떠함” 때문이다.
“어떠해야 함”의 규범과 “어떠함”의 수치는 모든 교회의 두 얼굴이고, 빛과 그늘의 애매성이다. 우리교회가 믿는 “자기-부정”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교회의 “어떠함”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거래(정의)의 원칙에서 어긋난다. 사실상, 우리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의 공통점이
자기-부정의 “어떠해야 함”과 자기-주장의 “어떠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동거”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함”을 살피면서, 다른 교회들의 실패에 대하여는 관용을 베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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