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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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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신

제목


주 안에서 모든 어려움 잘 견디어 이겨내시기 빕니다. 각각의 처소에서 예배드릴 ‘예람’ 생각하면서 오래전 설교 하나를 뽑아 여기 싣습니다. 평안을 기도하면서
제목: <<삶의 두 갈래>> [2003년 3월 16일]
본문: 이사야서 55: 9, 야고보서 4: 13-17
찬송 56, 342, 355 /교독 28(시편 12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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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뜻 잊고서

며칠 전 어느 교회 여성 모임에서 제게 친숙한 주제인 시민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좁은 자기의 삶을 벗어나 넓은 공동체의 선을 위해 함께 참여하고 거기에 기여하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여성분이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다 바쁘게 삽니다. 가정의 여러 일로 우리 모두 바쁩니다!"고 했습니다. 그 분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 제가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으로 말하고 있다는 투였습니다. 나무라듯 조금은 퉁명스러웠습니다. 질문이라고 했지만 분명 반론이었습니다.

질문을 받는 순간 저도 제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분이나 제가 공히 바쁘게 살고 있구나 하고 결론 아닌 결론을 마음 속으로 내리고 있었습니다.  

명색이 은퇴하였는데도 요 며칠 동안 저도 매우 분주하게 지났습니다. 일산으로 집을 옮겨 좀 더 조용한 곳에서 책도 읽고 걸핏하면 동양 최대라고 자랑하곤 하는 인공 호숫가를 거닐면서 그야말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얼마 동안은 그러한 생각이 산산조각 난 느낌이었습니다. 일산도 결코 여유 작작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주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제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것', 이 삶의 방식과 내용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2. '자기' 삶이란 것

우리에게는 '자기' 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이익과 자기 편리에 따라 사는 삶 말입니다. 경제의 여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더욱 더 그러한 '자기' 삶을 살아가기가 쉬울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저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쉽게 옮겨 다닙니다. 그것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이 능력을 낳아 아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족하며 살게 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입니다.

오늘 읽은 야고보서의 내용 가운데 바로 그러한 삶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이 도시나 저 도시로 가서 거기서 한 해를 머물면서 장사하여 돈벌이를 하겠다'고(13) 하는 삶의 방식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부유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는 두 부유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소작인들을 불공평하게 다루면서 치부한 토지 소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상인 계급이었습니다. 큰 토지를 소유하고는 그 곳에서 머물러 사는 토지 소유자들과는 달리, 상인들은 이 곳 저 곳을 두루 다니면서 장사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돈은 있었지만 이들 상인들의 사회 신분은 그렇게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물질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풍요롭게 '자기'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의 뜻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 시대의 상인 계급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우리도 어느 만큼 물질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고, 우리 나름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을 향해 쓴 본문의 내용은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의 교훈은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우리를 향해 던지는 교훈입니다. 이 곳에 가고 저 곳에 가면서 분주하게 지나는 우리를 향해 적고 있습니다.

자기가 영위하고 있는 삶, 자기의 편리와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삶,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중심'의 삶입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천년 만년 살겠다는 듯이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본문은 "들어라!"고 주의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 되는 물음을 던집니다.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자기 삶'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뭔가 자기 계획에 따라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계획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이어,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 하루를 엮어가고 있는 얼핏 안정된 것 같은 우리들의 삶이란 고작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자기 계획에 따라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계획된 삶이 무의미하고, 자기 의지와 의도에 따라 당당하게 사는 것 같은 그 젠체하는 삶이 "풀의 꽃과 같이"(1: 10) 사라져 갈 허망한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3. '하나님의 뜻' 살피기

이제 '자기 삶'이라는 것을 이렇듯 허망한 데서 끌어내야 합니다. 당장 내일이 어떠할지도 모르는 인간의 의지와 의도에 우리 삶을 맡기고 거기에 동여 매놓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뽐내며 살아가고 있는 그 삶이란 안개 같고 곧 지나갈 풀의 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 방식대로 살겠다고 하지말고, '그것과는 달리'--우리 말 번역으로 "도리어" 이렇게 하라고 성경은 일러줍니다. 곧,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아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겠다고 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중심'의 삶의 습속을 바꿔 '하나님 중심'의 삶의 습속을 익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 자기 삶이 '주의 뜻'인지 아닌지 비춰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가르침은 아주 익숙합니다.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이 말은 너무도 자주 들어 무슨 수학 공식이나 문법처럼 들리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암송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통례의 기독교인들은 걸핏하면 말버릇처럼 하나님의 뜻을 들먹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수다떨며 주어 섬기는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삶 그것이 '주의 뜻'에 비춰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 것인가를 되새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충족에 겨워 살아가고 있는 삶, 자기의 계획과 의도에 따라 지극히 영리하고 합리롭게 산다고 여기는 삶, 그러한 삶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주의 뜻'이라는 말을 건넬 수 없습니다. '주의 뜻'은 인간의 계획과 의도를 포장하는 말이어서도 안 되며,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말이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의도와 계산과 묘책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그 변두리로 밀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뜻' 위에 두는 격입니다. 조무래기 인간의 오만과 거만함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손함입니다.

우리가 가진 잔꾀가 며칠 동안 버텨낼 수 있습니까? 인간의 숨은 모략과 계략과 묘수라는 것이 과연 몇 주를 배겨낼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쟁취했다고 하는 권력이라는 것은 얼마 동안 부지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뽐내는 지식과 재주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인간의 지혜가 귀하다면, 인간의 지식과 재주와 힘이 값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모름지기 더욱 크고 넓은 하나님의 뜻 밑에 자리잡을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것은 껍데기며 쭉정이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우리는 읽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 9) 하신 여호와의 말씀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헤아려 알 수 있습니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성경에서 그 뜻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저런 말로 사람을 많이 끌어 모은다고 해서 그 교회의 목사가 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풀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종교 지도자가 달콤한 말을 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은혜가 넘친다'고 말해서는 안 되듯이, 우리 귀에 잘 들어온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잘 들려준다고 속단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국 성경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드러내고 있는 '주님의 뜻'에 우리의 삶을 비춰봐야 합니다. 그 빛에 비춰 우리의 삶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의 행동과 활동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의 뜻' 아래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인간의 계획과 판단 아래 삶을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4. 악과 죄 벗어나기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를 내세우며 통례의 아집과 자기 집착을 일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되뇌면서도 자기 중심의 삶에 매달려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자기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계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야고보서에서 저는 겸허함을 해답으로 읽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겸허함에서부터 오고 겸허함에서 출발합니다. 겸허함이 주는 놀라운 힘입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필연 자기를 과대하게 늘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위에 어떤 초월의 힘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권위의 출처이고 자기가 최종의 판단자로 행세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오만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은 이렇듯 겸허함을 잃어버린 데서부터 나옵니다. 겸허함을 잃은 자기 과대증의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악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을 휘어잡고, 자기보다 꾀가 모자라는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부려 자기 이익을 획책하고 도모합니다. 정치인들만이 아닙니다. 교육자도 그러합니다. 아니 목사도 그러하고 신부도 그러합니다. 자기의 명성이 커질수록 그렇게 될 가능성은 더욱 높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사회복지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어느 기독교 지도자가 형사 사건에 휘말려들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 의식을 행하는 가운데 무슨 환상을 보았다던가 하면서 교중들에게 일러주는 대로해야 한다고 하면서 강요성(?) 모금을 꾀하기도 하고 수많은 기부자들이 낸 기금을 불투명하게 처리했다고도 합니다. 거대한 한국 최대 복지 기관을 관장할 수 있게 된 자리에 오르면서 그는 겸허함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바로 그 겸허함의 상실이 자기 중심의 수렁으로 빠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겸손을 빼둔 성공은 그렇게 쉽게 시들어버리는 것입니다. 허망한 자기 과대증입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이것이 '악'이라고 가르칩니다.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자기 오만을 꺾지 않고 오히려 그 오만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의 뜻'을 거듭거듭 되풀이하면서 자기를 그 아래에 두어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겸허함을 행사치 않는 것, 그것이 오만이요 그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는 삶, 그것은 어쩔 수없이 '허탄한 자랑'을 낳게 됩니다. 겸허함을 잃은 인간의 오만, 그것이 '악'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 것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이 '주님의 뜻'이며 무엇이 '인간의 뜻'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분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옳고 바르고 선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옳고 선한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도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4. 맺으며

야고보서는 흔히 믿음과 행함 이 두 가지 가운데서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처럼 그 때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의 뜻을 아무렇게나 이해해서 행함이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어, 곁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합니다. 이 점을 바로잡아주고자 야고보서를 썼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결코 저버리지 않고 그 믿음을 행함으로 연결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들이 행해야 할 이치를 밝혀 깨우치고자 하는 서한문입니다. 믿는다 하면서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삶을 겸손히 되새겨, '주님의 뜻'에 따라 삶을 일궈가도록 가르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부산을 떨며 살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바쁘기만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삐 살아야 하는지 적어도 가끔은 물어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아니면 자기의 좁은 생각에 매여 살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에 아무런 잘못이나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자기 과대함이나 오만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아니, 바쁘고 분주하게 사는 것이 혹시 자기 중심의 축으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도 물어봐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는 더욱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자기 중심'의 삶의 방식에 매달려 더욱 바빠지고 더욱 분주해 진 것은 아닌지 물어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의 삶인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의 삶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사는 오만한 삶과 그러한 삶을 문제시하여 더 큰 뜻 아래로 들어서려는 겸허한 삶,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할 뿐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만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한 모임에서 이야기를 끝낸 다음 질문을 던졌던 그 여성분도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있었을 듯 합니다. "우리가 다 바쁘게 삽니다. 가정의 여러 일로 우리 모두 바쁩니다!"고 했던 그 퉁명스러운 말투 뒤에는 아마도 진지한 고민이 있을 법도 하기 때문입니다. 알기는 아는데 자기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깊은 죄 의식에서 던진 발언일수도 있습니다. 알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요 며칠 동안 분주하게 살아온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선택은 선택입니다. 어렵다고 해서 악을 택할 수도 없고 손쉬운 길이라고 해서 죄를 저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어려운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유선희  :  “걸핏하면 말버릇처럼 하나님의 뜻을 들먹인다”에서 얼굴이 확 뜨거워졌습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는 문제이기에'간단하지 않'은 하나님 뜻을 과연 제가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삶이란 사라져버릴 “안개”에 지나지 않으니, 제가 내세우고 있는 말과 행동은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는 것이니, 제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또 이 조그만 머리로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17절 오늘 설교의 마지막 구절,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죄를 짓고 감옥에 가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아도, 알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죄라니요.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매일 반복해왔던 것처럼 또 “돈을 벌어보겠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하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인간이니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지요. 그러고는 제가 오늘 하지 않은 일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말씀이 있기에 세상의 일과 제 중심의 일 외에 다른 일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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