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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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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문순

제목


십자가 수난
본문
이사야 53:6-8
요한복음 19:1-16

교독문 : 9번 시편 23편

찬송 316장 목마른 자들아, 517장 생명 진리 은혜되신,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들어가며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성령께 구하며 말씀을 듣고 생각합니다 예수 사람은 삶의 방향, 삶의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에 둡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형상으로, 참된 자신으로 자기답게 살기 위해, 그리스도인 시민으로 참된 시민답게 살기 위해,  예수께서 주신 참된 생명답게 살기 위해, 예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해 성령께 구합니다. 우리가 잘 못듣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순종하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순종하고 있는지 거스르고 있는지, 자기 혼자만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신으로, 참된 시민으로, 참된 생명으로 예수깨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하고 또 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순종의 본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이야기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길을 그 뜻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1. 메시아를 죽음으로 몰고간 인간 – 유대인들

당시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오백 년이 넘도록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며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하나님의 오랜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이방 땅에 포로로 흩어졌던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약속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인간을 구원하실 말씀이, 은혜와 진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막상 자신을 찾아온 메시아를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적대하고, 오해하고, 의심하고, 시기하고, 조롱했습니다. 결국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야 맘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음을 훤히 드러냈습니다.

유대인들의 모습은 우리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을 대표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인간들은 우리들은 저는 기다리던 메시아를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

우선 예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너무 불편한 말씀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눈 뜬 소경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9장 39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파를 향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말씀이 너무도 불편했습니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눈 떴다 믿었던 자기를 부인해야 했지만 부인하기 힘들었습니다. 막상 그들 앞에 도래한 메시아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는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반길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어기고 신성모독하는 것 같은 예수의 결함은 이런 불편함을 감추고 예수를 반대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로 보였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인간의 판단, 각자의 지성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유대인들은 나름 근거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13장에서는 거짓 선지자를 죽여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에 충실하다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성경을 잣대 삼지 못하고 그들 자신을 잣대삼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잣대로 거짓 선지자와 참된 선지자를 구별했던 탓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힘껏 거짓 선지자로 내몰았으니까요. 참 어렵고도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성경 역시 성령의 도움으로 그 참 뜻을 새기며 읽지 못할 때는 자기 뜻을 펼치는 무서운 무기가 되어 메시아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한편으로는 희극적으로 한편으로는 비극적으로 그 사실을 훤히 드러냅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던 유대인들이 결국 믿고 섬기고 두려워했던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로마 황제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소리 높여 고백하고 있으니까요.  죄 없는 예수를 놓아주려는 로마 관리 빌라도를 향해 그는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니라고 협박을 하고, 예수의 죄는 황제 폐하를 반역한 것이며, 심지어 대제사장들이 나서서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라면서 스스로의 신앙을 뒤집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요한복음 11장 48절에서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라고요. 어떤 신학자들은 여기서 '우리'라고 번역한 단어의 의미를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을 가리킨다고 보고 그들에게서 땅과 민족을 빼앗는다고 해석하며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들의 저의가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있었다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로마제국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더라도 제국 아래서 안전한 삶을 위해 메시아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점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눈 멀었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바로 제가, 우리가, 우리가 그런 것이지요. 실제로 내가 믿는 이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나인가, 세상인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 믿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두렵고도 두려운 일입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이 절실한, 약하고, 무능하고, 눈 멀고, 기만적인 유대인들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기고 새기며 살피고 살펴여 합니다.

2. 메시아를 죽음으로 몰고간 인간 – 빌라도

한편 빌라도는 공평하지 못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언뜻 보기에 그는 처음에는 예수가 죄가 없다고 공평한 듯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신성모독을 저질렀고 스스로를 왕이라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부하들이 싸워서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요 18:36)"이라며 다른 차원의 나라와 사람들임을 분명히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로마 황제가 두려워 자신을 협박하는 유대인들의 말을 따라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궁극으로 두려워하는 존재가 로마황제였다는 사실에서 빌라도와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3. 십자가 수난을 지고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따라

인간은 형편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약하고 걸려 넘어지기 쉬운 인간에게 순종의 길을 안내합니다. 다른 삶이 가능함을 일러주십니다. 예수님이 불러주시면 약하고 약한 우리는 바뀔 수 있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우리는 제대로 듣고 눈 뜰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 마가 8:34, 누가 9: 23)",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4-25)“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헬라어 원어는 자기 유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심없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조차 갈등하십니다. 말씀이, 진리가, 은혜가, 사랑이 사람처럼 육신으로 오셨으니까요. 예수님을 가장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마가복음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가 14:34),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 14:36) "

예수님도 십자가 지는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걸려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원대로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셨던 예수님께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그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능하게 하시니까요.

하나님 안에 계셨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오해와 의심과 적대와 조롱을 감내하셨습니다. 인간 예수로서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계신 분으로 인간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택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열망하던 힘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웃음거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다(요 17:26)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인간인 우리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그의 십자가는 그의 죽음은 누구에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당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요 10:18)"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예수님의 자발적인 순종이고 결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내몰았던 유대인과 빌라도에게 목숨을 빼앗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루셨습니다.

나약해서 걸려넘어지기 쉬운 인간인 우리는 괴롭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만만치 않습니다. 억울합니다. 분합니다. 야속합니다. 어렵습니다. 오해와 적대와 의심과 조롱을 견디며 십자가 지기는 두렵고 무섭습니다. 사랑도 빈약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돕고 계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성령과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말씀이요 진리이며 은혜이자 사랑이신 주님.
약하고 약한 우리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의심 많고 오해하고 사랑이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괴롭고 두렵고 상처 받기 쉬운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님의 기도와 사랑을 믿고
저희 자신을 부인하도록 보살피소서.
십자가를 지도록 이끄소서.
날마다 걸려넘어져도 다시 예수님 음성을 듣고 일어나도록 도우소서.
그 사랑으로 저희도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주신 참다운 나로, 참다운 그리스도인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과 예수님 품 안에사 살게 하소서.
날마다 걸려 넘어지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우리가 눈뜨고 귀 열어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보살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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