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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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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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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세운 집 (2021년 11월 7일)
반석 위에 세운 집


본문: 누가복음서 6:43~49, 요한계시록 2:1~7
찬송: 29장 (성도여 다 함께) 242장 (교회의 참된 터는) 379장 (주의 말씀 듣고서)
교독문: 19번 (시편 84편)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눅 6:43)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압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한다면, 이 말씀은 우리의 숨을 멎게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어떤 열매를 볼까요? 내게서 어떤 열매를 볼까요? 우리에게서, 내게서 명예욕, 분노, 위선, 탐욕, 질투, 증오 혹은 시기 등 나쁜 열매를 보는 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요구하십니다(눅 3:8). 우리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당연하다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회개에 알맞은 열매’(마 3:8)를 맺지 않는 유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마 23:3-5).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시나무’는 하나님을 배반한 데 대한 처벌입니다. 반면 ‘무화과’와 ‘포도’는 축복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배경을 고려한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너희에게서는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혹은 자비와 같은 좋은 열매를 악한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내기 때문입니다(눅 6:45). 말은 마음의 신호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 3:3). 사람이 먼저 거듭나지 않으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만 듣지 않습니다. 선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예수님이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습니다(눅 6:46).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소비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전혀 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마음, 예수님의 가르침과 우리의 삶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이제 우리는 ‘땅을 깊게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는 것’(눅 6:48)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갈 5:6). 그렇다면 누가 반석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고전 3:11).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사 28:16).
우리에게는 땅을 깊이 파는 것,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면 당연히 그 집이 맨 흙에다가 지어진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물살이 들이치면, 즉 검증의 시간이 되면 그 집이 맨 흙에다가 지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집은 홍수를 견디지 못합니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니,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고, 그 집의 무너짐이 엄청났습니다. 제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것을 모두 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성령으로 거듭나면 누구든 예수님이 가르친 것을 모두 행할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속죄의 죽음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거듭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 받고 거듭난 것은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벧전 1:3). 다른 것이 아닌 예수님의 그 크신 자비로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거듭납니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할 수 있고 그 결과 선한 사람이 되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예수님은 교회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 사이를 거니십니다(계2:1).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시며,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교회들을 심판하며, 필요하다면 교회를 없애거나(계 2:5) 어떤 신자 또는 어떤 집단을 벌하시기도 합니다(계 2:16,22). 하지만 끊임없이 교회에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도 합니다(계 2:17).
예수님은 교회의 지금의 행위와 처음의 행위, 즉 회심할 당시, 교회가 세워질 당시의 행위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십니다. 처음 행위는 처음 사랑의 열매, 사랑을 발견한 기쁨과 열의의 열매였습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반짝이는 열성,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의 힘, 정열의 분출 등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교회에서 이 모든 것이 떨어져 버렸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처음 사랑이 식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이처럼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잊거나 버리는 것(계 2:4)은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겠다.”(계 2:5)고 위협할 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는 이때부터 겉으로는 살았지만 실제로는 빈 교회로 남게 됩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예수님이 견고하고 정통적이고 오래된 교회를 그 자리에 그냥 보전하는 것이 이로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촛불을 끄시는 것이 아니라 촛대의 자리를 바꾸십니다(계 2:5). 즉 진리와 사랑의 촛불은 다른 교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오직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제도로서의 교회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부름을 듣는다면 살아남을 것입니다.
A 교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교회 2층 신자들이 앉는 좌석에서 괴성이 들려 왔습니다. 네 명의 사람이 한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각자 하나씩 잡고 들어 올려서 교회 바깥으로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끌려 나가는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교회 세습을 반대합니다. 교회는 사람,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입니다.” 교회가 목사 개인의 사유 재산이라면 A교회에서 끌려 나간 사람처럼 그 교회에서 목사의 뜻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목사에 대한 품위를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A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교회의 주인은 예수님도 아니고, 그 교회 신자들도 아니고 당회장 목사 개인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엡 5:23)인데 교회에서 누가 누구를 끌어내고 누가 누구더러 나가라고 말하는 것은 그 누가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자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동입니다. 교회에 유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교회에서 권위자는 성령 즉 예수님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 또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몇몇 소수만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위기 상황에서 행동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삶을 예수님의 말씀 위에 지으면 홍수가 나서 격렬한 물살이 나의 삶에 들이쳐도 나의 삶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예수님의 말씀 위에 지으면 홍수가 나서 격렬한 물살이 교회에 들이쳐도 교회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의 삶을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른 것 위에 지으면 물살이 들이칠 때 나의 삶은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엄청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른 것 위에 지으면 물살이 들이칠 때 교회는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엄청납니다. 나, 우리 그리고 교회는 지금 다시 예수님께 돌아가야만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나
주님을 의지하는 교회
만세반석이신 주님 때문에
큰 환난 풍파라도 흔들지 못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늘 한결같으신 주님의 자비 베푸시고
큰 은혜 내려주셔서
참 빛인 성령으로 나를 채워주십시오.
참 빛인 성령으로 교회를 채워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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