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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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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신

제목


개신교인의 품성 (종교개혁 기림 주일)
본문 이사야 43: 6-7; 에베소서 2: 8-10/교독 73 (종교개혁 주일)/찬송 24, 384, 381.


1. ‘신앙고백’:

이 해 우리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사경회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지난 4백년 가까이 개혁 교회의 믿음을 떠받쳐준 머릿돌이자 믿음을 이끌어준 길잡이였습니다. 마침 종교개혁 504돌을 기리는 이 주일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부하여 글을 써 발표하고 서로 대화하며 믿음을 살피자는 사경회가 겹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참 은혜로운 일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이제로부터 두 달 모자라는 스무 해 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하심에 따라 우리 예람교회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터한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지극히 자유롭고 지극히 열려있는 교회이지만—그리하여 무례를 저지르고 무질서한 혼란을 낳기도 하지만—, 어떤 믿음의 뼈대도 없는 신앙의 무정부 상태를 허용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엄연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고, 그 안에 들어서 있습니다. 이에 터하지 않은 어느 개인의 신앙이나 주장을 내세우는 끼리끼리의 모임이 아닙니다. 이 까닭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례(유아세례)를 받기 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핵심 내용을 담은 요리문답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의 ‘허락’을 받아 교중 앞에서 확증합니다. 우리 교회가 밟고 있는 공공의 절차입니다.

이 ‘신앙고백’ 제일 앞에 나오는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물음과 답입니다.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답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 31)는 구절이 보기입니다.


2. 믿음의 뜻:

사람마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 따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살피며 다듬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살피며 다듬습니다. ‘믿음’은 삶의 뜻을 일러줍니다. 우리 사회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유교 믿음을 따른다면, 핏줄로 타고난 어느 집안의 구성원으로, 어떤 것보다 먼저 집안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이 뜻 있다고 여겨 거기에 맞춰 삽니다. 다른 덕목보다 효심을 가지고 효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예수 사람으로 부름 받아 기독교의 믿음을 따른다면, 핏줄로 엮인 어느 집안의 구성원으로 한 집안을 위해 헌신하는 삶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데 삶의 뜻을 묶어두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보고 이해하며, 성경 말씀이 가리키는 데로 나아갑니다. 자기 집안의 테두리를 넘어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기독교 안에도 여러 믿음의 줄기가 갈래지어 있습니다. 천주교의 믿음도 있고 개신교의 믿음도 있습니다. 개신교 안에도 여러 믿음의 잔줄기가 있습니다. 각각의 특성이 있습니다. 각각 그 나름의 '삶의 뜻'을 가지고 있고, 그 뜻을 일러줍니다. 우리 교회가 터하고 있는 ‘믿음,’ 이번 사경회 때 함께 공부하게 된 이 믿음의 고백도 ‘삶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문답에서 곧바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어,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이 삶의 뜻을 성경의 첫머리로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잇대어 살펴볼 수는 없겠습니까? 사람이 이 우주에 태어나 이렇게 살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럽습니다. 분명 우리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태어나게 되었다고만 하면 우리의 삶이 너무도 덧없습니다.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이 삶에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일러줍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다음 그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창세기 1: 27).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지으신 다음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 31)고 하셨다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피조 질서이고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그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 질서 안의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에 따라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모름지기 그가 ‘좋아하시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하겠지요. 이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으뜸가는 ‘삶의 뜻’입니다. 이사야서 본문에는 하나님이 “내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의 지으신 뜻에 따라 마땅히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이해합니다. 피붙이의 관계에 갇혀 집안 식구만 바라보며 집안 식구만을 위해 살지 않고, 그 삶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믿는 사람은 이러한 삶에 뜻을 둡니다.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인은 ‘신앙고백’이 일러주는 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삶의 뜻을 둡니다.  


3. 믿음의 삶:

사람마다 사는 목적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힘을 쓰는 자리에 오르겠다는 목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첫째 되는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평생 자기를 즐거워하는’ 삶을 삽니다. 기독교의 '믿음'을 갖지 않은 세상 사람은 이를 궁극의 목적, 으뜸가는 제 일의 목적으로 삼아 이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열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합니다. 부지런합니다. 활발하고 적극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데 궁극의 목적, 으뜸가는 제 일의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개혁 교회의 얼개가 되는 이 ‘신앙고백’이 가르쳐주는 대로, 우리는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고 고백하며 삽니다. 모든 것에 앞서고 무엇보다 앞서는 이 삶의 으뜸 되는 목적을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열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합니다. 부지런합니다. 활발하고 적극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고 삶의 지향성이고 삶의 모습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삶이 개신교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삶은 어느 공간에 매이지 않습니다. 이 삶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수도원의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삶터에서 일터에서 드러나고 나타나야 할 삶입니다. ‘만인제사장론’이 일러주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삶은 어느 시간에 매이지 않습니다. 이 삶은 주일 하루가 아니라 주중의 모든 날에, 모든 시간대에서 실행되어야 할 삶입니다. ‘소명 의식’이 일러주는 삶입니다. 에베소서의 본문에 적혀있는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익히 아는 대로, 우리의 행위로 구원 받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구원 받았습니까? 빈둥거리며 제멋대로 떠벌리며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는 ‘선한 일’을 합니다. ‘선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시공간에 한정시키지 않고 두루 널리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정확이 말하면 이 삶이 개신교인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개신교인은 이 삶을 다른 무엇보다 값지고 보람되다고 믿고 이 삶에 헌신하며 깊은 뜻에서 ‘즐깁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열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활발하고 적극이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올차고 세차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개신교인다움이고, 개신교인의 품성입니다.


<기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난 사람답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 지음 받은 사람답게,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신령한 힘을 더해주시고,
주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은혜를 더해주시고
이 삶을 깊은 뜻에서 즐기도록
보살펴 주시기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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