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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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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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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 (2021년 10월 10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


본문: 마태복음서 18:6-14
찬송: 17장 (사랑의 하나님),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 561장 (예수님의 사랑은)
교독문: 72번 (이사야 58장)



                                                                       1


얼마 전 어느 대형교회의 장례식장에 ‘천국가신 000 원로목사 조문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인데, 교회 사람들이 자신들이 다니던 교회 원로목사가 죽자 천국에 갔다고 확인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는 일입니다. 신학대학에서 은퇴한 어느 교수가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거늘, 탐욕, 권력욕 그리고 색욕만이 아니라 온갖 죄를 지으며 갖은 오만을 떨던 자들이 죽으면 마치 천국 한 자리를 떼 놓은 당상이라 여긴다. 참으로 비신학적, 비정상적인 행태다.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맞먹겠다는 수작이다.” 이런 행태는 그 교회의 ‘집단 이기주의’의 끝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따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 18:6)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한 것으로 제자들을 보호하려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눅 15:1-7), 상대를 업신여기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등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엡 1:10), 하나님을 등진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그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따르는 그 사람의 영원한 생명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는 예수님의 가혹한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빼앗는 사람은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이 경고의 말씀은 거짓 선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거듭해서 신약 성경은 거짓 선생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거짓 선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이탈시켜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행 20:30). 거짓 선생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사람입니다(갈 1:10). 거짓 선생은 예수님을 배반하라고 유혹하는 자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을 예수님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게 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왜곡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원죄)으로 인해 타락한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마 18:7). 그러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만드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마 18:7) 그러나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파멸로 이끄는 사람입니까? 예수님 말씀처럼 나의 손이나 발이 상대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야 합니다. 내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또 나의 눈이 상대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마 18:8-9).



                                                                      2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롬 14:10). 이런 일을 두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업신여긴다는 말은 다양한 형태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상대를 무분별하게 혹은 오만하게 무시하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자신을 상대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상대의 잘못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상대를 우아하게 조롱하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상대에게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우리의 품위를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품위의 근거는 천사들의 보호입니다(마 18:10). 이스라엘 백성이 미하엘 천사의 보호를 받았듯이 우리도 천사의 보호를 받습니다. 천사의 보호를 받는 우리의 품위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는 품위입니다. 우리의 품위는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품위는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도, ‘지극히 작은 사람’(마 18:6)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업신여겨 울타리 바깥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선한 목자(요 10:11)이신 예수님은 길 잃은 양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주도적으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십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을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에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십니다. 목자는 그 양의 가치가 크기 때문에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양은 자기 것이며, 그의 도움이 없으면 그 양은 양 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목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목자는 양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목자는 길을 잃은 양에게 생각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이 잃은 양 한 마리만 소중하게 여기고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소중하게 여기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아닙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제외한 아흔아홉 마리의 양 중에서 길 잃은 양이 생기면 예수님은 그 양도 찾아 나서실 것입니다. 백 마리의 양 모두 목자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다시 찾은 것에 매우 기뻐합니다. 목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길 잃은 그 양이 특별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도 아니고 목자가 총애하는 양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목자는 자기 소유의 양을 모두 다시 자기 곁에 둘 수 있게 되어 기뻤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마 18:13). 이 비유에 등장하는 목자는「에스겔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행동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어 주십니다(겔 34:16).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도 찾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모든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혼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사람들’과 함께 천국으로 오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마 18:14).
이 ‘길 잃은 양의 비유’에 등장하는 목자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 듯이,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성실하게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나그네로 있는 사람들, 감옥에 있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 소망이 없는 사람들(마 25:31-46)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이들이 바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마 25:40)로서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마 18:10,14).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모두 길 잃은 양입니다.
주님은 길을 잃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 나셔서
주님의 집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 기뻐하시고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주님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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