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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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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은

제목


믿음의 경주를 달릴 수 있게 하셨다!
2020년 10월 18일
찬송: 새39(주 은혜를 받으려), 새28(복의 근원), 새414(이 세상은 요란하나)
본문: 창세기 15: 6, 18
교독문: 새52번(시119)

1. 들어가며
한 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권목사가 출근하고 아침 10시가 되기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길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서 자신의 월급을 적게 받고,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무급휴가로, 몇몇 뷔페사업장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은 환경에서도 버텨야하는 시간이 길어져 본사에 같이 있는 직원중 30%를 현장으로 보낼 결정을 했답니다. 그 과정에서 이를 좌천이라 받아들인 본사직원들이 사직을 표명했다는 회사소식이었습니다. 회사의 관리직 대표이사가 회사를 그만하고 싶다는 심정을 들은 마음이 가볍지 않아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얘기를 듣고,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듣기만 했습니다. 코로나사회에서 고통당하는 목소리입니다. 지금 코로나상황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어 자연환경을 함부러 대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위기 상황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우리들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이 시대 믿는 사람들이 이웃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2. 본 문
읽은 말씀에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했던 후손과 가나안 땅에 대한 깊은 회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배 중에 여호와가 직접 나타나 아브람과 대화합니다. 여호와가 나는 너의 보호이며, 큰 선물이라 나타나시는데 아브람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냐고 합니다. 자식이 없는데 하며 그 보호와 선물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거론되는 종에 대해 여호와는 아니라 하시며 천막에서 나와 하늘의 별을 보게 합니다. 낙담했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여호와가 아브람을 부르실 때 약속했던 ‘큰 민족’의 한 명도 없었지만 아브람은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와 아브람의 대화 가운데 갑자기 믿는 것을 아브람의 의(義 바름)로 여기셨다고 본문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주장합니다. 무엇이 바른 것이 될 단서인지 나오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말을 듣고, 따르고, 바라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차원 이상을 가리키며 사람의 전체 삶으로 드러나는 의식의 결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르다고 하는 주장은 예배영역에서 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특별히 어떤 행위(이를테면 신앙경력), 제물 없이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자유롭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앙만이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를 바르게 했다는 것을 하나의 결론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로 연결되는 다음 말씀은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 나타나시자 아브람은 그걸 무엇으로 알겠냐고 의심합니다. 약속했던 땅의 성취가 미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땅, 고향, 아버지 집, 자신을 안전하게 하는 소속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와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도 떠돌이, 나그네였을 뿐인 아브람이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역시 대화로 이루어지던 성서의 다음 구절은 설명없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징표를 보여주십시오” 하는 아브라함의 의심은 계약체결의식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가 그에게 짐승을 준비하라 한 대로 그는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그냥 두었습니다.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여호와가 가나안 땅을 직접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하나님의 정하신 역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연기나는 가마솥단지와 횃불이 나타나 그 짐승들 사이로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과 같은 운명에 처해도 된다고 보증해 주십니다. 아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전 삶에서 드러나는 믿음의 결단을 한 아브람은, 이번에는 거의 자연적인 의식이 소멸할 정도의 깊은 잠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원시적인 계약행동에 본문을 찬찬히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인 우리와 계약을 하는 부분은 지나치기 어렵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계약을 하는데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보증은 약자가 강자한테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강자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약자가 쓰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람사이에서 적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 계약을 한 것일까요? 모두 맘속으로 답하시겠지만 저는 우리가 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바벨탑까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엘렌 F. 데이비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인류에게 직접 복 주시려 하는 전략을 바꿔 한 사람과 계약한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한 사람과의 취약한 관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은 계약을 반드시 지키고, 인간은 하나님 믿어주기를 아주 아주 심각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이 혼자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은 이 자리에 인간을 불러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게 대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 스스로를 믿는데, 그때에서야 이웃들을 믿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이가 여기와보세요 요청하면 오는 부모처럼, 또 오지 못하면 왜 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하여 기다리게도, 요구를 취소하게도 하듯이 키우겠다고 하십니다 .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이 계약에 따른 부담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쌍방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매우 인간답게 대하고 키워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에 동참한 인간이 하나님의 계약을 받기만 하지 않고, 계약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존재로 대해주신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의 이해와 사랑과 기쁨과 용서를 끊임없이 같이 해나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토록 본래적이라는 걸 느낄 때 오는 안정감, 믿어주는 하나님을 통해 믿음을 가지는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삶의 문제들에 끈질기게 맞붙어 씨름할 수 있게 됩니다.


3. 다른 국면
계약의 또 다른 이름을 사랑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랑이 변하기도 하냐는 영화대사가 있는데 절대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관계가 다른 국면을 맞게 되기는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계명과 율례를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대가로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고-받기 식의 예배, 형식주의로 바뀌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표현인 계명과 율례 형식이 하나님의 은혜를 요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의미에서 믿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사는 삶도 없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통합적인 것이데, 믿음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게 없고, 그 믿음의 사람다운 삶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바(vision) 따라 전하게 된 선지자들의 연이은 촉구를 받아야 했습니다.

<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이사야1: 2-3>

<이에 나 야훼가 선언한다. 너희는 내 말을 따라 같은 피를 나눈 겨레를 풀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너희를 풀어 놓아 칼과 염병과 기근으로 죽게 하리라.
내가 분명히 말한다. 세상 모든 나라 사람이 너희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놀라리라.
너희들이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갈라 놓고 그 토막 사이로 지나가며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으면서도 이제 그 조문을 지키지 않고 계약을 어겼으니 나는 너희들을 그 송아지 꼴로 만들고 말리라. 예레미야34: 17-18 >

하나님은 더 이상 형식의 예배와 예물을 드리지 말고, 바르게 살라고 하십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보살피는 진정한 금식을 하라고 하십니다.

4. 맺으며
계약에 근거해서, 믿는 자들의 자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예수를 믿어 예수께 속한 모든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스스로 믿고 따를 힘을 주셨고, 우리 삶의 문제들과 맞서 끈질기게 달려나갈 용기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가 이웃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웃과 함께사는 믿음의 경주를 달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엎드리고(창17:3), 나그네를 대접하는(18:2) 아브람처럼 말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돌아보기에 인색한 저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힘과 용기로 이웃들을 살펴나가는 자들 되도록
항상 인도하여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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