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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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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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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2020년 10월 4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본문: 이사야서 40:6~8, 베드로전서 1:22~25
찬송: 56장(지난 이레 동안에), 253장(구원으로 인도하는), 264장(예수의 전한 복음)
교독문: 36번(이사야 40장)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갖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믿음의 사람들의 공동체에 들어서게 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능력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벧전 1:22). 우리가 진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정결해집니다. ‘진리’는 성서적으로는 객관적인 진리 이상의 것입니다. 성서의 ‘진리’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이 진리에 순종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말씀에서 말하신 진리를 인정하고 그 진리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를 실제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이기심과 악한 마음에 대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영혼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영혼의 정화는 용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형제의 사랑’은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5) 사도들도 예수님의 뜻을 이어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합니다.(롬 12:10).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주기 때문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벧전 4:8), 경건에 우애를 더하고,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벧후 1:7).
서로의 사랑은 꾸밈이 없어야 합니다, 즉 속여서는 안 됩니다. 거짓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척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거짓 사랑은 나의 이기심을 숨기는 인사치레의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라’는 경고는 우리에게 계속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필요가 내게 수고를 끼치는 바로 그 경우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감정 이상의 것입니다. 즉 사랑은 의지이며 행동입니다. 이 사랑은 ‘순결한 마음’(벧전 1:22)이라는 표현을 통해 확장되며 상대의 행복을 원하고 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대에 대한 진실한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이 사랑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신 것처럼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처럼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시기는 분열과 다툼을 키웁니다. 사랑은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겸손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이웃에게 창피를 주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연약한 이웃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살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고전 8:9). 사랑은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모욕을 당하였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고, 고난을 당하였으나 위협하지 않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는 것(벧전 2:23)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웃의 불행과 실패를 기뻐하지 않으며, 이웃이 진리 즉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 기쁨은 죄인이 회개할 때 하늘에서 느끼는 기쁨입니다(눅 15:7). 그 기쁨은 선한 목자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 혹은 잃은 드라크마 한 닢을 되찾았을 때 갖는 기쁨입니다(눅 15:1~10).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즉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구원의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행동에 모든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달라”고(눅 22:42) 간절히 기도하실 때 품으셨던 희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의 축복을 획득하는 것입니다(고전 13:4~7).

                                                                    2

‘꾸밈없는 사랑’(벧 1:22)은 믿음의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 새로 태어난 사람은 ‘형제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형제의 사랑은 인간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감정의 형성이 아니라, 오직 거듭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형제의 사랑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조입니다.
인간은 ‘썩을 씨’(벧 1:23)로 태어나며, 소멸하게 될 것으로 만들어져서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썩지 않을 씨’(벧 1:23)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 24:3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원의 특성을 지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인인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것과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 주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생기고, 주님의 명령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견고하게 제자리를 잡습니다(시 33:9).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십니다(롬 4:17).

                                                                     3

베드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기 위해서 예언자 이사야가 우리에게 복음으로 전해준 말을 인용합니다. 이사야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복음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게 복음의 내용을 묻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사 40:6)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사 40:6)라고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인간의 육체는 허약하고 덧없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배경은 암울합니다. 이 암울한 배경 때문에 인간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무조건 필요합니다. 이사야의 복음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리는 복음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내용의 말을 자신의 책의 첫 장부터 계속 말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위대하지만, 인간은 위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면, 인간은 티끌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엄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사 40:7)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영광은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없고 오직 창조주인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어적으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그도 마침내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시 49:18~20)
이사야는 인간의 연약함,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의 덧없음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함을 강조해서 말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사 40:8)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기 때문에, 새로운 ‘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이 영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풀이 마르듯이 인간은 모두 소멸합니다. 모든 영광, 능력, 권력. 명예, 모든 영향과 소유, 즉 보통의 인간에게 중요한 모든 것은 꽃처럼 곧 시듭니다. 본래의 인간은 죽음의 법칙, 소멸의 법칙 밑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영원합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은 지금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가 살던 당시 그리고 베드로가 살던 당시 공동체에 도달해서 공동체를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4

우리가 믿음을 통해 속하게 되는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은 꾸밈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원래 꾸밈없는 사랑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기심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을 위선으로, 그럴듯한 행동으로 감추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다시 깨끗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육체는
풀처럼 마르고
우리의 육체의 영광은
꽃처럼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셨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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