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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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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순

제목


고난의 의미
본문 예레미야 4:1-4, 30:24, 베드로후서 3:10-15
찬송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59장 성전을 떠나 가기 전,  75장 저 높고 푸른 하늘과
교독문 49.  빌립보서 2 장

들어가며
   코로나19라는 돌림병과 기후변화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기독교도가 아니어도 돌림병과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관심을 갖고 고민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도는 비기독교도와는 또 다른 측면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위기를 하나님 말씀에 터해서 들여다보고 해석하며 해법을 찾아가야 하니까요. 오늘은 구약 예언서인 예레미야서를 통해 돌림병과 기후변화가 몰고온 위기를 기독교도는 어떻게 풀이하며 대처해가야할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와 그의 시대
   예레미야는 어린 나이에 사역을 시작한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를 예언자로 정하셨기 때문이지요. 이는 예레미야 1장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는 위기와 고난에 시기에 태어나 고통 받는 예언자로 살았습니다. 제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도 고난이었고 예루살렘을 떠나 이집트로 끌려가서 살아가는 일도 고난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올곧게 선포하다 원성과 미움, 박해를 받으며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를 강제로 이집트로 끌고간 이들은 침략자들이 아니라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가 사역을 시작한 시기는 요시야 왕이 부패한 남유다를 개혁하고자 했던 때입니다. 요시야 왕이 남유다를 개혁하고자 했던 이유는 남유다가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흥망이 가팔랐던 시기, 작고 힘없는 나라 남유다 백성들과 지도자가 두려움에 빠져 의지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와 공의를 하찮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 여기는 다른 신에게 정신을 팔았고 주변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부족한 군사력을 매꾸는 자기들의 방식으로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자 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죽고 남유다는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채 결국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빼앗깁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은 제국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미 멸망한 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 남유다는 용케 앗수르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결국 앗수르를 제압하고 새로 등장한 제국 바벨론에 의해 북이스라엘처럼 멸망하기에 이릅니다. 유대인들의 상당수는 바벨론 노예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유다왕국의 대위기의 시대에 예레미야가 전했던 말씀은 대다수 유대백성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다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며 동맹에 혈안이 된 채 사람 힘으로 제국을 상대로 침략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또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어떤 상황에서도 멸망하게 두시지 않으신다며 태만하게 여겼습니다. 상당수 예언자들도 그런 생각을 두둔했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예언자만이 남유다의 부패상을 고발하며 유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제국을 통해 아주 무섭게 벌하실 거라며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을 뿐입니다. 성경은 극소수의 예언자가 선포했던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고 역사는 그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이 진짜 하나님 말씀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여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난 받으리라', '하나님의 진노가 다하고 유다가 깨닫는 날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새 계약을 맺어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시리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은 후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와 제대로 하나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예레미야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이 심판을 선포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의 태도를 돌이키라고 거듭해서 말씀을 전하셨지만 끝내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결국은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이스라엘 백성이 정신차리게 하는 도구로 쓰시고는 그들이 고난을 겪고 깨달은 후에야 새언약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베드로후서도 이와 유사합니다. 도둑처럼 주님의 날이 와서는 하늘은 불타고 하나님의 정의가 깃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하니까요. 그날을 기다리는 기독교들에게 요청되는 남다른 태도를 베드로 역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베드로후서에서 '도둑처럼 주님의 날이 온다'는 구절은 꽤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도둑은 예고하지 않은 채 예상을 깨고, 일상을 뒤흔들며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존재니까요. 코로나19도 기후변화도 무감각하고 무지한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도둑처럼 찾아왔으니까요. 갑작스런 일상의 단절을 피할 수 없었으니까요.

   누구나가 익숙했던 일상이 흔들리고 구축된 안정이 깨어진 단절된 삶을 거북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기독교도라면 각오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서 겪어야 하는 곤란함이든, 우리의 회개와 변화가 없어 닥쳐오는 무서운 심판이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찾아오는 새창조이든 기독교도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러한 급격한 변화와 단절을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할 테니까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고 심판이고 뜻이니까요.  

   예레미야는 고통스런 삶의 와중에도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들더라도 하나님께 고할 지언정 등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감당해야할 삶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킵니다. 예레미야의 고난은 멈추지 않지만 하나님은 늘 그런 예레미야와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진리와 공의와 정의를 무시하며 죄 짓던 남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과 식민지 노예로서의 고통스런 삶은 자기 죄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지은 죄 때문에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해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국제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의 길을 찾지 않았으니까요. 하나님의 경고와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했으니까요. 자기 힘으로, 강대국들을 흉내내며 살려고 했으니까요.
        
   오늘날 코로나19와 기후변화가 사람의 제어되지 않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심각하게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려고 과거와 단절하는 용기를 내고 결단하며 변화하는 이들은 드물지요. 핵발전소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고 핵없는세상도 그 중 하나지만 이번 태풍만으로도 우리나라 핵발전소 8기의 전력계통이 고장이 났습니다. 언제 어떤 자극으로 핵발전소가 터지는 사고가 터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반복해서 전하는 전쟁, 기근, 전염병은 이제는 오늘날의 우리 상황이고 전 지구적인 위기입니다.  
        
   돌아오라고 하나님께서 거듭 경고하셨듯이 돌아가지 않으면 결국 점점 더 심각한 위기로 우리 삶은 파탄날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나는 법이니까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견뎌내야 합니다. 고난과 위기를 통해 회개하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실현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무섭다고, 불안해서 당장 살아보겠다고 얕은 꾀를 내고 인간의 힘으로 뭘 해보려고 해봤자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면 소용없는 일일 뿐입니다. 더 심각한 위기로 치닫기 전이든, 더 심각한 고통을 겪게되든 기독교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것을 알고 회개하며 돌이키기까지 고통을 인내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일만이 기독교도의 사명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도는 고통을 각오하고 견뎌내야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고통마저도 인간을 돌이키실 기회로 만들어 주십니다.
인간이 자초한 고통의 이유를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오늘날 인간은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온 우리를 돌아오라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같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심각하게 반성할 수 있도록
고통을 감내하며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꾸짖어 주시고 이끌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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