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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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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영수

제목


나에게로 와서 쉬어라 (2020년 7월 5일)
나에게로 와서 쉬어라

본문: 마태복음서 11:25~30

찬송: 56장(지난 이레 동안에), 205장(예수 앞에 나오면), 217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교독문: 33번(시편 150편)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세계를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에 마음을 닫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이 겸손한 사람들, 즉 예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어린아이라고 부르십니다.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대립됩니다.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마 16:17). 예수님은 교만한 이스라엘의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나누어 주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영적인 의미에서 어린 아이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순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인간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강력한 고백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에서 가르치셨던 것, 즉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과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싸워 얻었던 것, 즉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라는 고백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주장하십니다(마 11:27). 하나님의 뜻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합니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마 23: 4).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위선자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그들이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 나라의 문을 닫고 그들이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기(마 23:13)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그들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3:15). 결국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을 향한 갈망을 갖고 있지만 인간적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던 바로 그 사람이 여기서 예수님에게 초대를 받습니다. 영적 빈곤을 인정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 하는 자신의 노력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만 초대에 응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사람에게 마음에 ‘쉼’을 얻을 것(마 11:28)이라는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쉼을 찾을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는 끊임없고 헛된 노력에서 해방되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행위와는 무관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영속하는 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것은 초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십니다. 처음 구원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할지라도 분명히 그 가운데 몇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마 22:8~10). 우리도 예수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3
그렇다고 우리가 쉼을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이 우리가 삶의 모든 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신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짐을 벗어 던져라”, “모든 멍에를 벗어라”가 아니라 그 반대로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멍에’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표현하는 생생한 개념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주 쓰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멍에를 진다”는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기고 다른 것은 섬기지 않겠다는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현 방법을 이어 나가십니다. 예수님의 통치권은 아버지에게서 부여받은 하나님의 통치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통치를 받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만이 우리를 사탄의 통치와 인간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우리를 해방시켜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갈 5:1).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우리의 의무는 예수님한테 배우는 것입니다.(마 11:29) 배운다는 것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마 11:29). 온유함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을 생명의 근원으로 이끄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겸손함입니다. 예수님의 겸손함은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선생들의 교만과 대립하는 것입니다(마 23:8).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우리의 선생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생은 예수님뿐입니다(마 23:8).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선생들은 우리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마 23:10). 동시에 예수님의 겸손함은 세상의 다른 통치자들의 교만과 대립하는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립니다.(마 20:25). 겸손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백성을 내리누르시지 않고, 섬기며 헌신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통치를, 그러한 멍에를 즐겨 감당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멍에는 편하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정말 “내 짐은 가볍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맞는 말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결국 박해를 받고 순교하는데도 “내 짐은 가볍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맞는 말일까요?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서 195번 매를 맞고, 채찍으로 세 번 맞고, 돌로 한 번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고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대해를 떠다녔습니다. 바울은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24, 27).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행 7). 야고보는 헤롯왕의 칼에 찔려 죽습니다(행 12:1~2). 베드로는 남들에게 묶여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습니다(요 21:18~19).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제자들이 겪는 시련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제자들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0: 13).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요일 5:3).


                                                                    5
예수님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공동체에 그들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먼저 들은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히 4:6).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무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히 4:11).
기독교인에게 위험은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들은 우리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경고합니다(빌 2:12). 구원을 경험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조건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딤후 2:13). 예수님은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문 안에서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십니다(마 7:8).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입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서 안식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안식에 들어가게 해주시는 분이 주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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