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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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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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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감사 기도 (2020년 2월 23일)

예수님의 감사기도



본문: 누가복음서 10:21-24


1. 들어가는 말
일흔두 명의 제자들의 전도여행이 성공을 거둔 것(눅10:17-18)을 비롯한 일련의 영적인 사건들은 십자가를 지게 되실 고난의 길에서 예수님에게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십니다(눅 20:21). 예수님은 그 어떤 고난에도 파괴될 수 없는 종말의 기쁨을 표시하십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쳐다보셨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시간에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쳐다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2.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십니다. 주기도문(눅 11:2)에서처럼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아버지라는 호칭을 맨 앞에 놓으십니다. 예수님에게 아버지는 전능하신 분으로 하늘과 땅의 주인(눅 10:21)이십니다. 아버지는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는 온갖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사 42:5) 그분은 새로운 땅과 새로운 하늘을 만들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사 65:17). 특히 이사야의 예언이 강조하듯이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이 없습니다(사 29:29).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를, 즉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예수님은 여기서 찬양하십니다. 이사야가 예고했듯이(사 29:14) 이 구원계획은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눅 10:21)에게는 감춰집니다. 때문에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실 메시아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지지합니다(행 3:17).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의미에서 ‘현명한 사람들’과 ‘영리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고, 구원을 보여줄 수 없고,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갈망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드러내 주셨다(눅 10:21)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린이들’(눅 9:48)로 불립니다. 우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마 18:3).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입니다(마 25:40).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 ‘작은 사람들’ 입니다(마 18:6). 우리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화를 냅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성전 뜰에서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마 2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것은 ‘혈과 육’(고전 15:50)에서 나온 계시가 아닙니다. 하늘과 성령에서 나온 계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볼 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찬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경멸당하는 보잘것없고 ‘유치하다고’ 기피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던 것입니다(고전 1:28).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어리석은 사람들’ 즉 분명히 부족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도움을 받고 깨우침을 받으려는 열려 있는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에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에게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그렇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그리고 기꺼이 말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롬 8:28)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를 주신다는 것(약 1:17)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겨 주신(눅 10:22)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를 완전하게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이 맺고 있는 독특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를 본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눅 10:22)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부터 함께 계셨기(요 1:2) 때문에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본 유일한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만이 결정적으로 누가 아버지이며, 누가 아들인지, 누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동체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셨습니다. 초기 공동체는 신약 성서에 그 계시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따라서 신약 성서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결정적인 내용과 완전한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3. 제자들을 축복하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은 축복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따로 하셨습니다(눅 10:23). 예수님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오직 제자들을 향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비밀교의’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비밀교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눅 10:23) 제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제자들은 복이 있다고 칭찬받을까요? 하나님만이 ‘볼 수 있는 눈’을 만드시는 분(잠 20:12)인데 제자들이 그 ‘볼 수 있는 눈’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 눈으로 제자들이 메시아의 구원의 때를 보기 때문입니다(사 52:10). 그러나 구약 시대에 많은 예언자와 왕은 제자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려 했지만 보지 못했고, 제자들이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들으려 했지만 듣지 못했습니다(눅 10:24).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은 메시아를 예언합니다(눅 24:44). 예수님의 견해에 따르면, 예수님의 오심을 모세를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이 입증합니다. 예언자들 이외에 예수님은 왕들도 언급하십니다. 아마 시편의 저자인 다윗(시편 22, 69, 110편)과 솔로몬(시편 72편)을 염두에 두신 발언일 것입니다. 그 밖에 어쩌면 예수님은 멜기세덱, 아하스 그리고 시드기야를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보고 싶었던 것을 보지 못했다”(눅 10:24)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를 비롯한 예언자들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습니다(히 11:13).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밝혀지는 사실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의 이해가 제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나중에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상상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언자들에게 한 가지 사실만은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들과 왕들이 올바르게 예언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십니다. 예언자들과 왕들의 예언이 없었다면 당시 제자들은 그들이 본 것을 보지 못하고, 그들이 들은 것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의 기록이 없다면 우리도 우리가 본 것을 보지 못하고, 들은 것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단지 소망만 할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제자들에 의해 그리고 지금 우리에 의해 체험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것’에 대한 환희, 영적인 목격자가 된 것에 대한 환희를 나중에 그들의 복음서에 기록합니다. 다음은 사도 요한의 감격적인 기록입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일 1:1-4,)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에서 메시아의 구원의 때가 시작됐다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씀하시고, 동시에 바로 자신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영적인 눈과 귀로 인식하고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4. 나오는 말
예수님은 하늘의 주님이시고, 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성으로도, 어떤 지성으로도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성과 지성은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고, 예수님과의 경험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엘리트들은 예수님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엘리트들은 하나님이 지금 행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현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학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변론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19-21).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갈망했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체험하기를 원했고, 메시아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다윗 같은 왕들도 메시아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예언자와 왕이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했던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우리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축복 속에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의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우리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많은 예언자와 왕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지금 성서의 말씀을 통해 보고 듣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임을
우리는 다시 고백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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