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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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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이삭 (2020년 2월 16일)

아브라함과 이삭


본문: 창세기 22:1-12


1. 들어가는 말
오늘의 본문은 이삭은 결국 희생되지 않고 결박된다는 사실과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대화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서, 천사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전개됩니다. 이삭을 결박한 사건이 진행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서 하나님에게로 옮겨갑니다. 모든 행동의 출발점과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삭은 이스마엘이 쫓겨난 후 아브라함에게 남은 유일한 아들이며, 사라와의 결혼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즉 대체할 수 없는 아들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들로 아브라함의 미래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시험이 닥칩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시험의 내용이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끔찍하고 잔인하게 들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실 ‘나는 너에게 네 온 마음이 쏠려 있는 네 아들, 네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네 외아들을 요구하고 간절히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창 12:1)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라”(창 22:2)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아브라함은 홀로 떠나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고독한 길을 홀로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는 홀로 결정을 내리고, 홀로 짐을 지고 홀로 결과를 견뎌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아브라함이 걸어야 할 고독한 길의 목적지는 모리아 땅입니다.

2. 모리아 땅을 향해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아브라함은 이해하기 어렵고 생명을 위협하는 임무를 실행하는 데 조건과 이의를 달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출발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습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습니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길을 떠났습니다(창 22:3).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가장 힘든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번제에 쓸 장작을 지우고, 자신은 위험한 물건인 불과 칼을 들었습니다. 출발의 목적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장소인 모리아 땅이었습니다. 모리아 땅에 이르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흘 동안 이동하면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은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욥처럼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침묵했고 침묵을 견뎠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브라함은 침묵을 깼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제물을 바치라고 지정하셨던 그 장소를 보고 몸이 떨렸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브라함은 일에 착수했습니다.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종에게는 산기슭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은 그 혼자 해야만 했습니다. 두 종을 향해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창 22:5) 아브라함은 자신이 방금 하려고 했던 일, 곧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일을 ‘예배’ 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 예배입니다.

3. 하나님의 명령대로 번제물을 바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이삭은 침묵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삭은 침묵을 깨고 아브라함에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집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창 22:7)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회피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창 22:8) 아브라함의 대답은 극도의 괴로움, 가혹한 고통 가운데서,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변하지 않는 복종 가운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 대답은 이삭을 전혀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는 걸 눈치 챘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통해 바로 자신이 번제물이라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위탁하셨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에 고무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직접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고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다음에 손을 뻗어서 칼을 쥡니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는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이 장면을 1645년의 부식 동판화에 그려 넣습니다. 동판화 속에는 아브라함의 뒤에 화로가 있고, 칼은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삭은 절벽 앞에 서 있습니다. 이삭은 땅에 옮겨진 장작 다발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이삭의 몸 뒤에는 위협적인 검은 구름이 생성됩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그리고 두 사람의 눈 사이의 중간에는 아브라함의 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집게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용기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자신의 결단력 혹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의 근심 가득한 얼굴과 가슴을 움켜쥔 오른손은 오히려 그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집게손가락으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오늘의 본문에 대한 렘브란트의 해석입니다. 렘브란트의 동판화가 묘사한 그림에는 다음의 시편 구절이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시 73:21-26)

4. 명령을 철회하시는 하나님
칼로 이삭을 내려치려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다급하게 간섭하십니다. 칼로 아들 이삭을 도살하려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 22:11)하고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 때문에 중단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의 목소리입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전한 소식은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창 22:12)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 편이셨습니다. 이삭은 살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며, 아브라함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시겠다(창 22:17)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을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철저히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자신의 외아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는 너무 어려운 시험을 통해 입증됩니다.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아브라함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신 8:2) 결국은 “이것이 다 아브라함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아브라함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신 8:16)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에게 기꺼이 바칠 수 있게(히 11:17) 했던 믿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죽은 사람들을 되살리실 수 있는(히 11:19)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삭을 도살하더라도 하나님이 이삭을 되살리실 거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여하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5. 나오는 말
장작을 짊어진 채 산을 오르는 이삭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삭이라는 제물은 예수님이라는 제물을 미리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결국 번제물로 하나님에게 바쳐지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번제물로 하나님에게 바쳐졌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 제물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영광의 주님’(고전 2:8)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첫째 날의 제물이며,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유월절 양입니다(고전 5:7).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요 1:29) 희생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살된 양입니다. 희생 동물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줍니다(요일 1:7). 하나님은 예수님이라는 제물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길을 터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 12:1).
오늘의 본문은 ‘이삭의 결박’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기로 이끄시지만, 이 위기 속에서 우리를 파멸시키시지 않고, 위로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파멸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의 절대적인 순종을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이삭을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시는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실 것입니다(롬 8:32).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주님이 주시는 시험을 잘 이겨내도록
주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 바치도록
주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도록
주님께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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