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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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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영수

제목


기독교인과 재물 (2020년 2월 2일)

기독교인과 재물



본문: 누가복음서 16:10-15

1. 들어가는 말
작은 일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할 것이다”(눅 16:10)라는 보편적인 원칙을 재물에 적용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것을 맡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눅 16:11). 여기서 지극히 작은 일은 ‘불의한 재물’을 ‘참된 것’은 영원한 생명(막 10:17)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재물을 충실히 사용하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을 충실히 사용하는 것을 믿음의 척도로 삼으신 것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재물을 충실하게 다루는 사람, 이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참된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로서 재물을 충실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것’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될 때 그것을 충실하게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재물 없이 살기를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재물을 책임이 있게, 충실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입과 재산을 충실히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물을 주셨던 분을 고려해서 감사함으로 그분의 뜻에 따라서 우리의 소유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이 특수한 경우 모든 소유의 포기를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 청년의 예가 여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예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부자 청년의 물음에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막 10:2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일 뿐만 아니라, ‘남의 것’(눅 16:12)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재물인 ‘남의 것’을 충실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몫’인 영적인 재산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진짜 기독교인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는 상인과 같습니다(마 13:46). 진짜 기독교인에게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눅 16:10)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재물을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재물을 바르게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막 10:21), 이웃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 주고(눅 6:35),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에게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리고(막 12:41-44),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탕진한 다음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고(눅 15:23),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처럼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섬깁니다(눅 8:3).

2. 하나님을 사랑한 제자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한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게 되어 있습니다(눅 16:13). 이 종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긴다면, 둘 중 하나를 사랑하고 다른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쪽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다른 쪽을 삶의 두 번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계 2:4). 우리는 재물에 앞서 ‘하나님’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지닌 위험은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위험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위험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로써 표현하셨습니다(막 10:25).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막 10:23). 우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눅 14:33). 우리의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지 않으면,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눅 12:33).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막 10:28).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렸습니다.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막 29-30).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예수님은 세관장 삭개오에게는 소유의 절반만을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음은 삭개오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눅 19:8) 이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셨습니다(눅 19:9).

3. 돈을 사랑한 바리새파 사람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니며 지켜봤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물에 관한 모든 말씀을 들었습니다(눅 16:14).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리새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비웃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것이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약점이라는 사실은 성서의 여러 군데에서 밝혀집니다. 그 가운데 두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우선 마태복음서 23장 25절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마 23:25). 다음은 마가복음서 12장 40절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막 12:40)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도 재물을 우상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눅 16:15). 다시 말해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돈을 좋아하는 것을 숨깁니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돈, 재산, 맘몬이 축복인 이유를 설명합니다.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아주 잘 섬길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눅 16:14). 바리새파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이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일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부자를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러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눅 16:15). 다시 말해서 사람들 가운데서 겉으로는 선하고 의로운 인상을 불러일으키지만, 내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탐욕이 가득합니다(마 23:28).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 6:9-10).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으로는 의롭게 보이지만, 돈을 사랑하고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할 뿐입니다(빌 3:4-9).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우리 자신의 의를 자랑합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빌 3:9)를 얻으려 합니까?

4. 나오는 말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재물을 우리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을 우리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자리를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공유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다면 그 이유는 아마 우리의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돈에 대한 욕심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으려는 위선 때문일 것입니다. 위선자는 자신을 속입니다. 위선자는 하나님과 이웃도 속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위선자를 도와주려 하십니다. 위선을 버리지 않고서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부자들에 속한다면 교만하지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또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앞날을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스스로 쌓아서, 참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딤전 6:17-19). 우리는 온갖 탐욕을 멀리 해야 합니다.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눅 12:15).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딤전 6:7-8).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재물을 사랑하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재물이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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