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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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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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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2019년 11월 3일)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본문: 누가복음 13:1-9


1. 들어가는 말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호소는 예수님이 생각하신 재앙이 우리에게 임박했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과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 깔려 죽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예외 없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뿌리에 놓여 있습니다.(눅 13:6-9)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서 그 피를 그들의 희생 제물에 섞은 사건은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사람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운명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예수님의 전형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함께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고, 달리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호소입니다. 무화과나무 비유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회개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 회개할 기회는 마지막 단 한 번밖에 남아 있지 않고, 회개할 시기도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2.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몇몇 사람이 왜 예수님에게 빌라도의 학살 행위를 보고했을까요? 아마 보고한 사람들은 열심당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에 맞선 폭동을 이끌었으며, 예수님에게서 로마로부터의 해방전쟁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을 자극해서 메시아로서 로마에 선전포고를 하시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여하든 그들은 정치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여느 때처럼 분명합니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눅 13:2) 예수님은 빌라도의 학살 사건을 철저하게 정치적 영역에서 종교적 영역으로 옮기십니다. 예수님은 열심당원들의 정치에 관심이 없듯이 빌라도의 정치에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보이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인들, 로마인들과 열심당원들이 아니라 죄와 죄인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인지 아닌지 하는 중요한 포인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이렇게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 갈릴리 사람들을 특별히 못된 죄인으로 처벌하셨다고 말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그런 변을 당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그렇지 않다”(눅 13:3)고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은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갈릴리 사람도 그들처럼 큰 죄인입니다. 아니 모든 유대인이 큰 죄인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큰 죄인입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처럼 망할 것입니다(눅 13:3).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 즉 최후의 심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빌라도의 학살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정치적 질문에 종교적 답변을 내놓으십니다. 예수님은 빌라도를 비난하지 않고 빌라도의 행동을 미화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과 연결시키십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주인공이지, 빌라도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둘째, 예수님은 로마에 맞선 전쟁, 해방전쟁을 선포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열심당원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러한 입장이 실망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모두 이미 구약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는 구원 받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회개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고 의식적으로 계속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만 합니다. 넷째,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을,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여기십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전쟁이 아니라, 회개에서 보십니다. 여섯째, 예수님은 빌라도를 하나님의 도구로 보십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통치권을 의심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변경하시기 전에는 빌라도의 통치를 감수해야만 합니다(롬 13:1-2).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의를 주시기 위해서 또 최근에 발생한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사망한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사건도 이른바 ‘불행한 사건’ 혹은 ‘재앙’에 속합니다. 본문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탑’은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실로암 연못 옆에 서 있습니다(요 9:7,11). 실로암 연못에서 기혼 샘의 물을 성벽 안의 어느 지점으로 보내기 위해서 히스기야 왕이 건설하게 한 수로가 끝이 납니다(대하 32:30). 아마 그 ‘탑’은 오래된 성벽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탑이 무너질 때 열여덟 사람이 깔려 죽었습니다. 열여덟 사람이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눅 13:4)일까요?  “그렇지 않다” (눅 13:5)고 예수님은  단호하게 부정하십니다. 열여덟 사람은 다른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면, 그 사람들은 모두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생명을 가져가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죽음은 죄의 삯”(롬 6:23)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너희도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눅 13:5)라고 말씀하신 뜻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심각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첫째, 그러한 불행한 사건에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무조건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더 큰 죄인일 가능성이 많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그러한 불행한 사건을 두고 하나님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누구도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언제든지 도로 가져가실 수 있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셋째, 그러한 불행한 사건은 하나님의 경고의 표시입니다. 그러한 불행한 사건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명하도록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시선과 생각이 한 가지 질문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우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모두 우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겔 18:30-31)

3. 그러나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무화과나무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포도원’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입니다.(미 7:1-3)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입니다.(마 20:1)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들이셨던 노력입니다.(사 5:2) ‘열매’는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포도원지기’일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요 15:1 이하) 그리고 “찍어 버려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3년 동안 기다렸던 열매를 무화과나무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이 자신이 고용한 포도원 지기에게 그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라는 포도원 주인의 주장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지기가 반대한 것이 놀랍습니다. 포도원 지기는 특별한 일을 하려 합니다. 포도원 지기는 무화과나무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려 합니다.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포도원 지기는 특별한 일을 하려 하고, 최종적으로 가능한 일을 시도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눅 13:9) 분명한 사실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뽑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마 3:10)
누가복음서에만 전승되는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비유를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눅 13:8) 이것은 이스라엘과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청원입니다. 하지만 이 청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해만이라는. 포도원 지기는 나무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려 합니다. 포도원 지기는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하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설교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아마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아마’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를 위한 회개의 기회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할까요? 만약 이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찍혀 버려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개는 긴급하게 필요합니다. 회개를 하지 않으면, 심판이 옵니다. 예수님은 직접 심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심판하실 것입니다.(요 3:17-18)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지금 열어 놓으신 이 회개의 기회를 이용할까요? 무화과나무 비유는 이 질문을 미해결로 남겨 놓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부족한 것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포도원을 설치하고,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맺을 시간을 충분히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서 열매를 기대하셨지만 열매를 찾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의 결과는 아닐까요? 따라서 나의 삶도 이미 끝장났을지도 모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찍어 버리라는 하나님이 옳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땅에서 영양분을 빼앗아 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대변자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실 것을 하나님께 요청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4. 나오는 말
사람들은 삶에 불행이 닥치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불행이 닥친 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 내가 본 대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욥 4:7-8). “오히려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이 아니냐?”(욥 22:5).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십니다. 삶에 불행이 닥치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 모두 갑작스러운 파멸의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지금이 회개할 시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고후 6:2)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아직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입니다.
주님, 우리를 찍어 버리지 마시기를 간청합니다.
주님, 우리가 열매를 맺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회개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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